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은 왜 계속 앞으로 나아갈까요. 2006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을 처음 봤을 때 저는 5년간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스크린 속 세상만큼은 아니었지만, 미래가 완전히 막혀버린 느낌만큼은 정확히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아이가 사라진 세상, 그래서 더 무서운 줄거리
전쟁이나 재난보다 더 무서운 설정이 있을까요. 《칠드런 오브 맨》이 제시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 즉 붕괴된 미래 사회의 핵심은 폭력이나 전염병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사실입니다. 여기서 디스토피아란 이상적인 유토피아와 반대로, 억압과 절망이 만연한 부정적 미래 사회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무기나 괴물 없이 그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등골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배경은 2027년입니다. 원인 불명의 인류 불임(human infertility) 현상이 18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류 불임이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상태로, 이 영화에서는 그 원인조차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깊은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 질서가 붕괴한 가운데 영국만이 강압적인 통제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난민들은 철조망 안에 격리된 채 짐승처럼 다뤄집니다.
주인공 테오 파론은 저와 조금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스스로를 지킬 신념도 잃어버린 인물입니다. 그런데 전 연인 줄리언의 부탁으로 난민 여성 키를 보호하게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키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입니다. 단순한 개인의 임신이 아니라 인류 존속 가능성 자체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제가 이 줄거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벡스힐 전투 장면이었습니다. 총격이 오가는 건물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서로를 겨누던 군인들과 피난민들이 잠시 손을 멈춥니다. 그 고요함이 채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총성으로 깨집니다. 영화는 새 생명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고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잔혹한 순간에도 인간이 잠깐은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롱테이크(long take) 기법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롱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랜 시간 연속으로 촬영하는 기법으로, 관객이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날것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차량 습격 장면과 벡스힐 시가전 장면은 이 기법 덕분에 어떤 액션 블록버스터보다 더 숨막히게 느껴집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기법으로 출처: IMDb — Children of Men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배경: 2027년, 18년째 신생아 출생 제로 상태
- 핵심 갈등: 유일하게 임신한 난민 여성 키를 안전하게 이송하는 과정
- 연출: 롱테이크 기법으로 극도의 현장감 구현
- 결말: 인도주의 연구 단체 '휴먼 프로젝트'의 배 '투모로우'가 등장하며 열린 결말로 마무리
희망의 의미, 포기한 자리에서 다시 찾은 것
영화를 본 뒤 오래 생각한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행동하는 걸까요, 아니면 행동하기 때문에 희망이 생기는 걸까요.
테오는 처음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키와 아기를 한 걸음씩 더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선택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지키는 행동이 됩니다.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 즉 인물이 사건을 통해 내적으로 변화해가는 서사 구조로 보면, 테오는 무기력한 방관자에서 조용한 수호자로 이동합니다. 이 변화가 설교 없이 행동으로만 그려진다는 점이 저는 특히 좋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난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가지고 있어서 스펙터클을 기대했는데, 막상 영화가 끝난 뒤에는 내 얘기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5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35살에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던 그때, 저에게는 테오처럼 뚜렷한 사명도, 돌아갈 과거도 없었습니다.
그때 한 지인이 제게 말해줬습니다. 결과가 없어도 5년을 버텼다는 사실 자체가 꾸준함의 증거라고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그 말이 위로인지 팩트인지 당시엔 구분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그 말 하나가 방향을 바꿔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스톡 그림 작가 활동입니다.
처음엔 어떤 그림이 필요한지도 몰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잘 팔리는 그림보다 꾸준히 올리는 그림이 결국 노출을 만들더라고요. 수익이 빠르게 늘지는 않았지만, 등록 수가 쌓일수록 월별 수익 그래프가 조금씩 우상향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만든 것이 쌓이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5년 공부가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영화 속 키를 보호하던 테오처럼, 저는 거대한 목표 없이 오늘 그림 하나를 더 올리는 선택을 반복했습니다. 수익 극대화 전략(monetization strategy)이라는 거창한 계획도 없었습니다. 수익 극대화 전략이란 콘텐츠나 서비스를 통해 수입을 최대화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을 말하는데, 저는 그런 것 없이 그냥 매일 조금씩 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오히려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배 이름이 '투모로우', 내일입니다. 테오는 자신이 살아남을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키가 그 배에 닿을 수 있도록 마지막 힘을 씁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 희망은 결과가 보장된 뒤에 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오늘의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투모로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칠드런 오브 맨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키와 아기는 어떻게 됐나요?
A. 네, 명확한 해답 없이 끝납니다. 테오는 부상을 입은 채 키에게 아이 돌보는 법을 알려주고, 안개 속에서 '투모로우'라는 이름의 배가 나타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키와 아기가 그 배에 안전하게 오르는 장면은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여백을 남긴 결말이라,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 칠드런 오브 맨이 원작 소설과 많이 다른가요?
A. P. D. 제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영화는 톤과 시각이 상당히 다릅니다. 소설이 신학적·철학적 성찰에 무게를 두는 반면, 영화는 난민 문제와 정치적 억압 같은 현실적 맥락을 훨씬 강하게 다룹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같은 소재를 얼마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Q. 롱테이크 장면이 몇 분이나 되나요?
A. 가장 유명한 벡스힐 전투 롱테이크는 약 4분 이상 편집 없이 이어집니다. 차량 습격 장면도 약 2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 수십 회의 리허설이 필요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Q.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뒤 미리캔버스 작가로 수익이 실제로 생기나요?
A. 처음 몇 달은 수익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더니, 등록한 요소 수가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서부터 조금씩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수익을 기대하기보다 꾸준히 올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느꼈고, 지금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결론
《칠드런 오브 맨》은 절망을 배경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언젠가 좋아질 거야' 하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지금 눈앞의 한 사람을 위해 발을 내딛는 선택에서 나온다는 점이 저에게는 오래 남았습니다.
5년의 공시 생활을 포기한 뒤 제가 찾은 것도 비슷한 논리였습니다.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그림 하나를 더 올리는 것, 그 반복이 쌓여 조금씩 달라지는 숫자를 보는 것. 테오의 투모로우가 제게는 매일 쌓이는 등록 수였습니다. 아직 목표한 수익에 닿지 않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줄거리를 미리 알고 봐도 전혀 손해가 없습니다. 오히려 테오의 선택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더 선명하게 보이실 겁니다. 그리고 보고 난 뒤에는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투모로우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