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주윤발이라는 배우를 '영웅본색'의 그 멋진 바바리코트 남자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코트는 온데간데없고, 낡은 슈퍼마켓에서 허둥대는 생계형 아저씨로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이쪽이 더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사랑을 다룬 영화인데, 이상하게 제 연애 시절 실수들이 떠올랐습니다.우연한 만남 — 팩트로 보는 이 영화의 설정일반적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라고 하면 총격전, 의리, 비장한 희생을 먼저 떠올립니다. 제 경험상 주윤발 필모를 훑다 보면 그런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나관중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1980~90년대 홍콩 생활 밀착 소극(小劇), 즉 거창한 사건 없이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재난 장르에서 '가족'이 그렇게 중요한 서사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2024년 개봉한 재난 스릴러 《서바이브》는 자기 공명 역전(磁氣極 역전), 즉 지구 자기장이 뒤집히면서 바닷물이 육지로 쏟아지는 극단적 재난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설정이 다소 허술하다는 걸 알면서도 제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건, 화면 너머로 제 이별 직후의 감각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바다가 사라진 세상 — 당연함이 무너질 때영화는 평화로운 요트 위에서 시작합니다. 아들 벤의 생일을 축하하던 가족에게 이상 신호가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죠. 인터넷이 끊기고, 하늘에서 무언가가 추락하고, 엔진이 멎습니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바다가 통째로 사라져 있습니다.여기..
저는 공부 잘하는 동생 옆에서 자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비교는 당연한 일이었고, 어른이 된 뒤에도 그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어메이징 메리》를 보면서 천재 소녀의 이야기인데도 제 눈에는 자꾸 다른 장면들이 걸렸습니다. 재능이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비교라는 말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제 동생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습니다. 저는 그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한 아이였고,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어른들의 눈에 우리는 분명히 다른 아이들이었습니다.처음에는 그저 성적 차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대학원 진학 소식, 연구개발 성과, 수익 창출 이야기까지. 동생의 이야기가 들..
저도 한때 "항상 밝은 사람"이라는 말이 칭찬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말이 저를 옭아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메소드연기》를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코미디 배우로 굳어버린 주인공이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봐달라며 몸을 던지는 이야기. 웃기면서도 어딘가 찌릿했습니다.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 얼마나 무거운가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초반만 해도 그냥 유쾌한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주인공 이동휘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데뷔작 하나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십수 년이 흘러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한 작품만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새로운 작품 이야기를 꺼내면 어느새 대화는 다시 옛날 그 작품으로 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