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주윤발이라는 배우를 '영웅본색'의 그 멋진 바바리코트 남자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코트는 온데간데없고, 낡은 슈퍼마켓에서 허둥대는 생계형 아저씨로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이쪽이 더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사랑을 다룬 영화인데, 이상하게 제 연애 시절 실수들이 떠올랐습니다.우연한 만남 — 팩트로 보는 이 영화의 설정일반적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라고 하면 총격전, 의리, 비장한 희생을 먼저 떠올립니다. 제 경험상 주윤발 필모를 훑다 보면 그런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나관중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1980~90년대 홍콩 생활 밀착 소극(小劇), 즉 거창한 사건 없이 ..
솔직히 저는 오래된 홍콩 코미디 영화를 그렇게 진지하게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시간이 남아서 틀었는데, 어느 순간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1982년 작 《최가박당》은 허관걸·맥가·장애가가 출연한 버디 코미디 액션 영화로, 당시 홍콩 영화 사상 최초로 2천만 홍콩달러 흥행 수입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숫자보다 인상 깊었던 건,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홍콩 황금기가 만든 흥행 공식 — 버디물과 스펙터클제가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탄생 배경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홍콩 영화 황금기에는 삼합회(三合會), 즉 홍콩 기반의 조직범죄 집단이 영화 자금에 개입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일부 영화인들이 그 자본에서..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편한 문제, 풀기 싫은 상황,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 그냥 외면하면 언젠가 흐지부지 사라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화 《표인: 풍기대막》을 보면서 그 오래된 착각이 다시 한번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사의 이야기가 어쩌면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강한 사람도 피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영화의 주인공 도마는 표인(表人)입니다. 여기서 표인이란 현상금을 받고 목표물을 추적하거나 호송을 맡는 무사, 즉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을 뜻합니다. 단순히 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생업으로 삼는 인물입니다. 무공도 뛰어나고 담도 크습니다. 도적단 두목 앞에 홀로 앉아 ..
어릴 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가족을 원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은 제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안 풀릴 때는 태어난 환경 탓을 했으니까요. 영화 《비광》 예고편을 보다가 그 오래된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전설의 타자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아버지, 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 그 사이에서 자라난 딸이 친구의 죽음으로 살인 용의자가 되는 이야기. 단순한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제가 느끼기엔 이건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묻는 작품이었습니다.부모의 선택과 아이의 죄책감영화 속 동주는 어머니 쪽 친구가 사망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그런데 제가 영상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은 동주가 꺼낸 한마디였습니다. "아빠, 엄마 죽은 건 나 때문이야." 일반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