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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가족을 원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은 제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안 풀릴 때는 태어난 환경 탓을 했으니까요. 영화 《비광》 예고편을 보다가 그 오래된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전설의 타자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아버지, 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 그 사이에서 자라난 딸이 친구의 죽음으로 살인 용의자가 되는 이야기. 단순한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제가 느끼기엔 이건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묻는 작품이었습니다.
부모의 선택과 아이의 죄책감
영화 속 동주는 어머니 쪽 친구가 사망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그런데 제가 영상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은 동주가 꺼낸 한마디였습니다. "아빠, 엄마 죽은 건 나 때문이야." 일반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불행에 책임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현실을 돌아보면 어른들의 갈등 한가운데서 자란 아이들이 실제로 이런 죄책감을 내면화하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여기서 '생존자 죄책감(survivor guilt)'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생존자 죄책감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불행에서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고 느끼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동주가 느끼는 감정이 딱 이것입니다. 자신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부가 갈라졌고, 친구가 죽은 것도 자신 탓이라는 논리. 어른들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그 나이에 혼자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생각하면 쉽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 아동기 외상과 죄책감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이나 가정 내 갈등을 경험한 아이들의 상당수가 자기 귀인(self-attribution), 즉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동주의 대사는 그냥 극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아이들이 겪는 심리를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도 비슷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들어 보일 때 "내가 없었으면 더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왜곡된 생각이었는지 압니다. 그런데 당시엔 그게 진심이었습니다. 동주의 저 한마디가 그래서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한편 남미가 8년 전 처음 동주를 찾아갔을 때 한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난 너 책임 못 줘. 나도 엄마가 그지 같은 여자를 귀염 같은 거 당해 본 적도 없고." 말투는 거칩니다. 그런데 그 안에 "그러니 너도 완벽한 어른을 기대하지 말라"는 솔직함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라면 아이에게 따뜻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험상 오히려 이렇게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어른이 아이에게 더 솔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 아이의 죄책감은 어른들의 갈등 구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생존자 죄책감(survivor guilt)은 의지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심리 반응입니다
- 완벽하지 않아도 솔직한 어른이 아이에게 현실적인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 가족의 불행을 아이 한 명에게 귀속시키는 시선 자체가 이미 폭력일 수 있습니다
구원서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영화 《비광》의 감독 이지원은 전작 《미스백》에서도 비슷한 구도를 다뤘습니다. 상처받은 어른이 더 상처받기 쉬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서사. 그 작품이 유독 강하게 남았던 이유는 구원자가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흠집이 있고, 실수를 하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하는 인물이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설득력 있었습니다.
《비광》의 중구도 같은 맥락처럼 보입니다. 야구계에서의 구원 투수(relief pitcher) 개념에서 빌려오자면, 구원 투수란 위기 상황에서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하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실제 야구에서 구원 투수는 처음부터 에이스가 아니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중구는 4번 타자 출신으로 36연패 투수로 전락한 인물입니다. 그 설정 자체가 이미 "망가진 사람이 구원자가 되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고편을 보면서 유일하게 걱정했던 부분은 구원서사(redemption arc)의 전형성입니다. 구원서사란 주인공이 과거의 실패와 잘못을 딛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스스로를 회복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강력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한 번의 행동으로 너무 깔끔하게 씻어낸다면 오히려 공허해집니다. 중구가 8년 동안 딸에게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한 무게감이 후반부에도 충분히 유지되는지가 이 영화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 영화 속에서 미디어와 정치권이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도 예고편 안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납니다. 정치적 스캔들을 덮기 위해 한 가족의 사건을 '먹잇감'으로 삼는 구조.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발간하는 언론 신뢰도 조사를 보면, 자극적 보도가 단기 클릭을 높이지만 장기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영화 속 최 기자의 행동이 단순한 악역 설정이 아니라 실제 미디어 생태계의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제가 직접 느끼기엔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층위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 영화에서 정치·미디어 비판은 배경으로만 기능하고 결국 가족 드라마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지원 감독은 전작에서도 사회 구조를 단순한 배경으로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작품에서도 유지된다면, 《비광》은 단순한 가족 멜로드라마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비광 개봉일이 언제인가요?
A. 공개된 정보 기준으로 2024년 9월 2일 개봉 예정입니다. 상영관 정보는 개봉 직전에 확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최신 정보는 영화 공식 채널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Q. 비광 감독이 미스백 감독이랑 같은 사람인가요?
A. 맞습니다. 이지원 감독의 신작입니다. 《미스백》(2018)에서도 상처받은 어른이 아이를 지키는 구조를 다뤘는데, 《비광》은 그보다 한층 복잡한 가족 관계와 사회 구조를 함께 담아낸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작을 좋아했다면 이번 작품도 비슷한 결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Q. 류승룡이랑 하지원이 같이 나오는 영화가 처음인가요?
A. 두 배우가 같은 작품에서 주연으로 함께하는 것은 《비광》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두 배우를 함께 기대하는 관객들이 많은데, 제가 예고편을 보면서 느낀 바로는 감정선의 충돌보다 각자 짊어진 무게감을 나란히 놓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Q. 비광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A. '비광(飛光)'은 '빛이 날다' 또는 '날아오르는 빛'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쓰는 비광(秘光)이라는 뜻과 함께,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빛나는 패를 꺼내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과 연결됩니다. 제가 보기엔 화려했던 시절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포기하지 않는 순간을 '빛'으로 정의한 제목 같습니다.
결론
저는 가족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족에게 가장 모난 사람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밖에서 치이고 돌아와서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짜증을 냈고, 잘 안 풀릴 때는 태어난 환경을 탓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순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비광》은 그 모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어른들이 완벽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야기. 이 영화가 단순히 눈물을 짜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합니다.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