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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한 권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10년입니다.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NHK 드라마 《배를 엮다》를 보기 전까지는요. 2024년 방영된 이 드라마는 시미즈 마리코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패션 잡지 편집부에서 사전 편집부로 좌천된 주인공 미도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예상 밖으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사전이 아니라, 제가 평소에 무심코 쓰던 말들이었습니다.



무의식적 언어 — 나쁜 의도 없이도 상처는 전달된다

드라마 초반, 주인공 미도리는 일부러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평가와 무시가 반복해서 묻어납니다. 동료의 노력을 별것 아닌 것처럼 흘려보내고, 남자친구 쇼헤이가 사진작가로서 도전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의 꿈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무의식적 언어 습관입니다. 무의식적 언어 습관이란, 특정 의도 없이 반복되는 말투나 표현이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미도리가 사전에서 '같잖다'는 단어를 찾아봤을 때, 그 사전적 의미에 "경시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는 장면은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악기를 배우는 모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연주하던 분이 처음 리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제가 "이 정도는 금방 되지 않나요?"라고 했던 말이 상대방에게는 꽤 상처가 됐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저로서는 격려하려던 말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분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버린 셈이었죠.

의도와 전달 사이의 간극, 이게 이 드라마가 첫 번째로 건드리는 지점입니다. 말의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상대방이 선하게 받아들이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제 경험상 이건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쉽게 놓치게 됩니다.

요약: 나쁜 의도 없는 말도 무의식적 언어 습관이 되면 상대에게 상처로 전달될 수 있으며, 미도리의 이야기는 이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말의 무게 — 사전 한 줄이 누군가의 세계를 규정한다

드라마 중반, 미도리는 표제어 비교 작업을 하다가 '연애'라는 단어 앞에서 멈춥니다. 당시 국어사전에 실린 연애의 정의에는 예외 없이 '이성끼리' 혹은 '남녀끼리'라는 전제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꺼내는 개념이 '전형적 예시(典型的例示)'입니다. 전형적 예시란 사전이 어떤 단어를 설명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례를 기준으로 삼는 편집 원칙을 말합니다. 마지가 편집부원들에게 각자 토끼를 그려보라고 했을 때, 모두가 귀가 긴 토끼를 그렸다는 장면이 바로 이 개념을 쉽게 풀어낸 장면입니다.

하지만 미도리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토끼와 달리 사람은 사전을 직접 찾아보고, 자신이 거기에 포함되는지 아닌지를 확인합니다. 만약 자신의 감정이 사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혹은 정의에서 지워진 느낌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미도리가 통계 자료를 들고 와서 일본인 동성애자 비율이 7.6%에 달한다는 수치를 제시하며 "연애에 남녀끼리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건 통계상으로도 이상하다"고 발언하는 장면은,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언어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규정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사전은 중립적인 도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제가 이 장면을 보고 나서 국어사전 몇 군데를 직접 찾아봤더니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정의된 단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말의 무게는 글자 수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 표제어(標題語): 사전에 표기되어 정의되는 기본 단어 단위
  • 전형적 예시: 가장 보편적인 사례를 기준 삼아 단어를 설명하는 편집 원칙
  • 교정(校正): 원고의 오류를 찾아 수정하는 작업으로, 사전은 최소 다섯 번 이상 진행
  • 대도회(大渡海): 드라마 속 사전 편집부가 13년 전부터 준비 중인 종이 국어사전의 이름

참고로 일본 국립국어연구소(NINJAL)는 언어의 사회적 영향력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국어연구소(NINJAL)). 사전 한 줄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형성한다는 관점은 이미 언어학에서 오래된 논의입니다.

요약: 사전의 전형적 예시 원칙은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정의에서 배제된 사람에게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드라마는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전 편집 — 좋아하지 않아도 시간을 들이면 보이는 것들

미도리가 사전 편집부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보인 반응은 솔직히 공감이 됐습니다. 매달 새 잡지를 내던 사람이 13년째 한 권의 사전을 만들고 있는 부서에 갑자기 들어오게 됐으니까요. 그녀가 5개월 치 작업량을 계산기로 두드려보고 좌절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지회사 영업사원 미야모토와 미도리의 대화입니다. 미야모토는 처음부터 종이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전이 완성되기까지 3년이 남았으니, 자신은 종이에, 미도리는 사전에 먼저 시간을 들여보고 나서 정말 좋아하게 됐는지 확인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저는 악기를 배우면서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악기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오래 배울 수 있다고들 하는데, 제 경험상 순서가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느 순간 박자가 맞아 들어갈 때의 감각이 좋아지면서 조금씩 애정이 생겼습니다. 좋아하니까 시간을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을 쓰다 보니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 사전 편집 작업도 비슷합니다. 편집부원들이 경쟁사 사전인 '은하 국어사전 제5판'과 대도회의 표제어를 일일이 손으로 비교 대조하는 장면은 보기에 따라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느린 과정 속에서 오히려 각 단어의 결을 세밀하게 느끼는 눈이 생기는 것이죠. 언어학에서는 이를 언어 감수성(linguistic sensitivit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언어 감수성이란 단어의 뉘앙스, 사용 맥락, 사회적 함의를 섬세하게 감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실제로 UNESCO는 언어가 문화 정체성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하며, 언어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꾸준히 언급해왔습니다(출처: UNESCO 언어 다양성). 사전 편집은 단순 출판 업무가 아니라, 그 시대 언어의 지형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릅니다.

요약: 좋아하는 마음은 시작의 조건이 아니라 시간을 투자한 결과일 수 있으며, 드라마는 이를 사전 편집과 미도리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배를 엮다 드라마, 영화랑 내용이 많이 다른가요?

A.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시점이 다릅니다. 영화가 사전 편집자 마지의 시선으로 전개됐다면, 2024년 NHK 드라마는 패션 잡지 출신 미도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영화 버전이 더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드라마를 직접 봤을 때는 미도리라는 외부인의 눈으로 사전의 세계에 함께 입문하는 느낌이 오히려 몰입에 유리했습니다.

 

Q. 드라마 배를 엮다, 사전 편집 과정을 실제로 잘 묘사하나요?

A. 표제어 비교, 교정 횟수, 용지 선정까지 꽤 세밀하게 다룹니다. 특히 사전 교정을 최소 다섯 번 이상 본다는 설정이나, 종이의 촉감이 페이지 넘기는 경험에 영향을 준다는 디테일은 실제 출판 편집 과정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냥 드라마적 과장이라기보다는 사전 제작의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Q. 배를 엮다에서 '연애' 단어 논쟁, 실제로 사전에 그런 표현이 있나요?

A. 드라마 속 미도리가 지적한 것처럼, 실제로 많은 국어사전에 '연애'의 정의에 이성 간이라는 전제가 명시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 포함된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몇 가지 사전을 찾아본 결과, 최근 개정판에서 표현을 수정하거나 보완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이 문제를 픽션으로만 다루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Q. 일본어를 몰라도 드라마를 충분히 즐길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언어 자체보다는 말을 다루는 사람들의 진심, 그리고 주인공이 말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특유의 어감이나 어원이 중요한 장면에서는 자막이 충분히 보완해줍니다. 오히려 자국어가 아닌 언어의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바라보는 게 더 객관적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면도 있었습니다.

 

결론

《배를 엮다》는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말을 다시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미도리가 처음 사전 편집부에 왔을 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드라마 후반에도 하지만, 그 말이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안에 어떤 경험이 쌓였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 드라마는 이 사실을 조용하고 천천히 보여줍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평소 아무렇지 않게 쓰던 표현들을 한 번씩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당장 뭔가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그냥 한 박자 더 생각하게 됐다는 쪽이 정확합니다. 말에 그 정도의 여백을 두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드라마가 조용히 증명해줬으니까요.

잔잔하고 느린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말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사람에게 닿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H0JtNATf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