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족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미스매치》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오히려 가장 무심했던 건 아닐까 싶어서요. 4월 23일 개봉하는 이 영화, 생각보다 꽤 찔리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가족을 가장 오래 봤다고 가장 잘 아는 걸까요?
영화의 주인공 봉수는 사고 이후 해리성 기억상실증(Dissociative Amnesia)을 겪습니다. 여기서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란 심리적 충격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특정 기간의 기억, 혹은 자신과 관련된 인물 정보가 통째로 지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깜빡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봉수의 경우는 여기에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까지 겹칩니다. 안면인식장애란 상대방의 얼굴을 보아도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신경학적 증상으로, 봉수는 딸을 친구로, 친구를 아내로 인식하며 가족 관계도 자체가 뒤엉켜 버립니다. 영화 속 의사가 이를 두고 "안면인식장애와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혼합된 상태"라고 진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그 대사에서 오히려 봉수가 얼마나 오랫동안 관계의 압박을 받아왔는지를 느꼈습니다.
제가 소심한 편이라 평소 가족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게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를 봉수를 통해 보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요. 가족이라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가족이기 때문에 더 많이 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 해리성 기억상실증: 심리적 충격으로 자신과 관련된 기억이 차단되는 상태
- 안면인식장애: 타인의 얼굴을 보아도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신경학적 증상
- 두 증상의 혼합으로 봉수의 가족 관계도 전체가 뒤바뀌며 코미디가 시작됨
관계 오류가 만들어낸 웃음, 그 뒤에 남는 것
봉수가 딸 지운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밥까지 사겠다고 나서는 장면은 솔직히 웃겼습니다. 그런데 웃고 나서 금방 멈칫하게 됩니다. 딸이 아빠한테 존댓말을 쓰고, 아빠는 그게 더 불편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 간극이 꽤 오래됐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화가 활용한 설정은 단순한 기억상실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관계 오류(Relationship Mismatch)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관계 오류란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서 받았던 감정의 인상은 어딘가에 남아 있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재배열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봉수가 아내 성애를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풀이 죽은 그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장면이 그 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봉수가 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손이 되게 작았어"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얼굴은 기억 못 해도 그 작은 손을 잡았을 때의 감각은 지워지지 않았던 거죠.
한국심리학회에 따르면 감정 기억(Emotional Memory)은 사실 기억보다 훨씬 강하게 뇌에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봉수가 이름과 얼굴은 잊어도 딸에 대한 따뜻함만은 남아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 코미디가 찌르는 건 결국 우리의 무심함입니다
아내 성애는 이 영화에서 사실상 가장 고된 인물입니다. 남편이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을 때 혼자서 단칸방 곰팡이 벽지를 버티며 회사를 일으켰고, 지금도 회사와 가족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봉수에게 그 시절의 성애 속사정은 제대로 전달된 적이 없습니다.
이건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제가 주변에서도 자주 보던 패턴이었습니다. 가족끼리는 오히려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중요한 말을 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가까운 사람한테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삭이다가 나중에 엉뚱한 타이밍에 터뜨린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 영화가 기존 기억상실 소재의 가족 코미디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기억이 완전히 지워진 것이 아니라 관계의 배열이 뒤섞였다는 설정 덕분에, 봉수는 가족들을 낯선 시선으로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설정이 단순히 웃기려고 만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족에게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료에 따르면 가족 내 소통 부재는 구성원 각각의 심리적 소진(Psychological Burnout)을 가속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여기서 심리적 소진이란 장기간의 감정적 압박으로 인해 에너지와 의욕이 고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봉수 가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소진 상태였다는 게, 영화를 보는 내내 저한테는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미스매치는 어떤 장르인가요?
A. 가족 코미디 장르입니다. 무능력한 가장 봉수가 사고로 기억과 관계 인식이 뒤엉키며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중심으로 하지만, 후반부에는 감동과 따뜻함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코미디에만 치우치지 않아서 보고 나서 여운이 남는 편입니다.
Q.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실제로 이런 식으로 나타나나요?
A. 실제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특정 기간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차단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영화처럼 가족 전체를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과장된 설정이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외상 이후 가까운 사람을 감정적으로 멀게 느끼는 증상은 실제로 보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Q. 미스매치 출연 배우는 누구인가요?
A. 주인공 봉수 역에 오대환 배우, 아내 성애 역에 오윤아 배우가 출연합니다. 오윤아 배우는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며, 코미디 장르에 강한 구유필 배우도 함께 출연합니다. 세 배우의 조합이 이 영화의 흡입력을 상당 부분 만들어냅니다.
Q. 가족 영화인데 아이들이랑 같이 봐도 괜찮은가요?
A. 청소년 이상이라면 함께 보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코미디 요소가 강하지만 가족 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오히려 가족끼리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생기는 영화입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일부 장면에서 설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봉수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웃긴 건 분명한데, 어딘가 안쓰러웠습니다. 가족 안에서 늘 부족한 사람으로만 정의되다 보면 정작 자신의 좋은 면을 본인도 잊게 되는 것 같아서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미스매치》는 황당한 기억 오류를 소재로 삼지만, 결국 말하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가족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 더 물어보는 편이 낫다는 것. 오늘 가까운 사람에게 평소보다 한 마디 더 건네보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남긴 숙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