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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군체》를 보기 전까지 "연상호 감독이 또 좀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좀비가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설정이 영화관 안에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뜬금없이 AI 뉴스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는 말은 맞지만, 그 이유가 생각보다 흥미롭습니다.



집단지성, 영화 속 좀비가 AI처럼 느껴진 이유

《군체》에서 감염자들이 기존 좀비와 달리 행동한다는 걸 처음 알아챈 순간은, 그들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등골이 오싹했는데, 공포의 원인이 단순한 '빠른 좀비'가 아니라 '모방하고 배우는 좀비'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입니다. 여기서 집단지성이란 개별 개체의 지능이 낮더라도 다수가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할 때 훨씬 높은 수준의 판단과 행동이 가능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개미 군집이나 벌떼가 대표적인 자연 사례로 꼽히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감염자들이 점액질을 통해 연결되는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실제로 집단지성 연구는 학계에서도 활발합니다. MIT 미디어랩 산하 집단지성센터(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는 인간과 기계가 연결될 때 어떤 방식으로 집단적 문제 해결 능력이 달라지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출처: MIT 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 영화 속 설정이 그냥 SF적 상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AI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 개체가 실패하면 그 정보가 즉시 전체에 전달되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구조. 이건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학습 방식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인공신경망이란 인간 뇌의 뉴런 연결 방식을 모방해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인식하는 AI 기술의 기반 구조입니다. 우리가 쓰는 챗GPT나 이미지 생성 AI가 모두 이 위에 서 있습니다.

물론 영화적 허용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개연성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라면 후반부에서 서영철이 감염자들을 직접 지휘하는 장면들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초반에 강조되던 군체의 자율적인 진화가 결국 한 인물의 통제 하에 귀속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영화 제목이 약속했던 '군체'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저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아쉬움조차 하나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도 결국 누군가 중심을 쥐게 된다는 것. 완벽한 네트워크도 지배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

  • 집단지성: 개체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문제 해결을 집단 연결로 가능하게 하는 원리
  • 인공신경망: 인간 뇌 구조를 모방한 AI 학습 기반 기술로, 오늘날 거의 모든 생성형 AI의 핵심
  • 업데이트(영화 내 용어): 한 감염자의 학습 결과가 무리 전체에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현상
요약: 《군체》의 감염자는 집단지성과 실시간 정보 공유로 진화하며, 이 설정은 현실의 AI 학습 구조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어 영화 밖에서도 생각거리를 남긴다.

 

앤트밀 결말, 그리고 AI 시대를 사는 우리의 선택

영화의 결말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끝이야?"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앤트밀(Ant mill) 현상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니 결말의 의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앤트밀이란 군대개미 집단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선두 개체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후속 개체들이 앞 무리를 착각해 무한 원형 행진을 하다 결국 탈진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에서는 서영철이 목표 타깃으로 설정한 옷을 다른 감염자가 입게 되면서 공격 명령이 충돌하고, 집단 전체가 이 앤트밀 루프에 빠지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쉽게 말해 컴퓨터 프로그램이 치명적 오류로 블루스크린을 띄운 뒤 재부팅되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오류의 원인이 '연결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모든 개체가 즉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잘못된 정보가 집단 전체로 동시에 퍼집니다. 분산된 판단 능력이 없으니 오류를 검증하고 수정할 주체도 없습니다. 이 취약점은 서영철이 만든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이자,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질문이 좀비 영화 안에 담긴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은 생존 자체에 집중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군체》의 결말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이해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이 앤트밀 장치가 영화에서 가장 잘 설계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며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어릴 때만 해도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세상이 제 일상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속도감이 영화 속 감염자들의 진화와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AI 분야 연구 기관인 스탠퍼드 인간중심 AI 연구소(HAI)의 2024년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모델의 성능은 최근 수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으며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Stanford HAI AI Index). 제가 느낀 "어? 벌써 여기까지?"라는 감각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서영철은 인간이 서로 속이고 배신하는 비효율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모두가 하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논리는 얼핏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그 '완벽한 합의'가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틀린 방향으로 향할 때 아무도 멈추자고 말하지 않는 시스템이니까요.

AI를 어떻게 쓸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을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기술을 도구로 쓰는 것과 기술이 지향하는 방향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요약: 앤트밀 결말은 완벽한 연결이 오히려 집단 전체의 치명적 취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AI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군체 영화, 부산행이랑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나요?

A. 저는 부산행, 군체, 반도 순으로 봤습니다. 부산행이 감정선과 설정의 균형이 가장 잘 잡혔다는 시각이 많은데, 저도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군체》는 좀비 설정 자체의 참신함에서는 부산행을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군체 결말에서 좀비들이 갑자기 멈추는 이유가 뭔가요?

A. 앤트밀 현상 때문에 집단 전체가 정보 충돌 오류 상태에 빠지고, 서영철이 직접 개입해 오류의 원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전체가 초기화됩니다. 쉽게 말해 컴퓨터 프로그램이 치명적 오류 뒤 강제 재부팅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 때문에 서영철이 앤트밀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Q.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던데, 그래도 볼 만한가요?

A. 개연성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라면 솔직히 불편한 장면이 꽤 있습니다. 반면 좀비 장르 자체를 즐기거나 설정의 신선함을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영화적 허용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따라 체감이 크게 달라지는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Q. 영화에서 집단지성 좀비가 AI와 닮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한 개체의 학습이 즉시 집단 전체에 전파되는 구조가, AI가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며 성능을 업데이트하는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물론 좀비와 AI는 전혀 다른 존재이지만, 기술이 인간의 예상 속도를 앞질러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의 맥락에서 영화가 간접적으로 이 주제를 건드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군체》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캐릭터 소비가 빠르고 일부 대사는 진부하며, 후반부의 전개가 초반 설정의 기대치를 온전히 채우지는 못합니다. 그런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좀비라는 익숙한 장르 안에서 집단지성과 진화라는 개념을 꽤 진지하게 끌어들인 시도 자체 때문입니다. 특히 앤트밀 결말이 던지는 질문, 즉 완벽하게 연결된 집단이 오히려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역설은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것 자체보다 그 방향을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군체》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결말까지 주의 깊게 챙겨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O3wiUvoI48